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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 #8. 골목 모퉁이를 도니

골목 모퉁이를 도니 왕복 2차선 골목에 차들이 중앙선을 넘어 다닌다. 앞차가 중앙선을 넘었을 때, 도로에 널브러진 종이박스들이 보였다. 낡은 플라스틱 유모차, 그리고 한 노인이 목장갑을 낀 손으로 박스를 주워 담고 있었다.

나는 중앙선을 넘었다가 최대한 차를 인도에 붙여대곤 비상등을 켰다. 다행히 차가 많이 다니는 골목은 아니었다. 점퍼 지퍼를 올리고 차 문을 여니 하얀 입김이 나왔다. 나는 그대로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골목 가를 돌며 모았을 박스들은 크기와 무늬가 제각각이었다.

“아이고, 손 아프다.”
“괜찮아요, 이 정돈.”

유모차를 한쪽으로 옮겨놓고, 맞은편 차선에 가까운 박스부터 모아나갔다. 크고 단단한 박스는 아래로, 얇고 어중간한 박스는 따로 모았다. 유모차는 이런 박스들을 옮기기에 적당하지 못했지만, 위, 아래, 뒷공간에 최대한 박스들을 욱여넣었다. 햇빛이 건물 사이로 길을 비추었다.

자전거 타이어에 쓰였던 듯한 고무 튜브는 노인이 힘주어 묶기에도, 박스를 단단히 고정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어찌어찌 박스들을 유모차에 겨우 고정하곤, 노인에게 신신당부했다.

“조심히 가셔야 해요. 안 그럼 아까처럼 또 쏟아질 거예요.”
“고마워서 어쩌나…”

손을 대충 털고 차로 돌아왔다. 그 노인은 언제부터 흩어진 박스를 모으고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차가 위태롭게 노인 곁을 지나쳤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봤고, 내가 도왔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시 시동을 걸고 지척의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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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9.)
*[작문] 말머리의 글들은 어떤 특정한 인물이나 단체와 관련이 없는 순수한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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